이성부 좋은 시 봄. 수 많은 봄 시중 사랑받는 명시다.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출처: 이성부, 봄, 우리들의 양식, 민음사, 1995.
* 시 원문에는 연 구분이 없다.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임의로 연 구분을 했다.
🍎 해설
봄을 노래한 시는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이성부 시인의 이 명시 봄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피천득은 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민들레와 오랑캐꽃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봄, 이런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니다.더구나 봄이 사십을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녹슨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피천득, 봄 중에서)
귀하 나이는 사십을 넘었는가? 그렇다면 귀하는 행운아다. 봄, 더딜수록 간절한 봄이 사뿐히 다가 오고 있다. 겨울이 가면 당연히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 응결되어 봄이 오고 있다. 이번 봄은 유달리 의미가 크다. 여러분이 코로나19의 고통을 이겨낸 바로 그 자리에 찬란한 기쁨으로 오는 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봄을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로 노래하고 있다. 약 100년 전 빼앗긴 봄의 3월,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부를 때에도 훗날 언젠가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을 꿈꾸었을 것이다. 봄이 돌아오고 있다. 아주 특별한 봄이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 이기고 돌아오는 오는 봄을 마중 나가자.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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