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좋은 시 단풍 드는 날.나무는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언제 버려야 할 때인지를 안다.그러나 사람은...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출처: 도종환, 단풍 드는 날,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2002>
🍎 해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고 시인은 화두를 꺼냈다. 나뭇잎은 '제 삶의 이유' 였고 '제 몸의 전부'였다. 그런 나뭇잎을 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무는 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나무의 삶의 절정이다.
그러나 인생사에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버려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란 자기 집착과 자기애가 강하기 때문에 진정 버려할 것과 버려야 할 때를 스스로 잘 모른다. 버리지 못할 때마다 자기 합리화의 구실을 댄다.그래서 때로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방하착(放下着)이란 불교 화두다. 마음속에 한 생각도 지니지 말고 텅 빈 허공처럼 유지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중국 당나라 때 한 스님이 큰 스님에게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 그 경계가 어떠합니까?” 이에 큰 스님이 “내려놓거라(방하착, 放下着).”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이 "한 물건도 가지지 않았는데 무엇을 방하착합니까?"라고 다시 묻자 "그러면 지고 가거라(착득거, 着得去)."라고 대답하였다. 즉,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 그 자체도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만큼 완전히 내려놓으면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도 나무처럼 스스로 버릴 것을, 그리고 버려야 할 때를 알아 가장 빛나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이 될까.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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