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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좋은 시 목마와 숙녀

무명시인M 2022. 4. 2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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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좋은 시 목마와 숙녀. Source: www. pexels. com

박인환 좋은 시 목마와 숙녀. 낭만과 센티멘탈리즘의 젊은 시인 박인환의 대표작품.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

 

출처 : 박인환 시집, 박인환 전 시집, 스타북스, 2018.

 

🍎 해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 프루스트, 조이스와 함께 심리주의파를 대표하는 영국 작가. 세계대전 한가운데서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템스강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 페시미즘 : 염세주의(pessimism)

* 등대에 : '등대에(To the lighthouse)'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목마를 타던 어린 소녀가 숙녀가 되고,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방울 소리만 남긴 채 사라져버린다. 소녀는 그 방울 소리를 추억하는 늙은 여류 작가가 되고. 냉혹하게 '가고 오는' 세월이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 요약으로 이 시는 시작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그 모든 것들이 떠나든 죽든,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바람에 쓰러지는 술병을 바라다보아야 하는 허무주의에 빠진다. 낭만과 센티멘털리즘과 허무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한국전쟁 이후의 황폐한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를 드러내고 있다.

 

박인환 시인은 우리 가슴에 남아 있는 젊은 시인이다, 센티멘탈리즘과 도시 서정의 기수로 도시와 문명에 대한 모더니즘적인 추구를 했다. 시대상황적인 회의와 절망으로 밝은 면보다는 우울과 감상 등 어두운 면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청록파 등 전원적인 서정이 주조를 이루던 1950년대에 도시적 서정을 탐구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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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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