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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좋은 시 긍정적인 밥

무명시인M 2022. 1. 14.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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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좋은 시 긍정적인 밥. Source: www. pexels. com

힘민복 좋은 시 긍정적인 밥. 깊이가 있고 아름다운 시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출처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2006.

 

🍎 해설

함민복 시인은 마흔 중반이 넘도록 강화도 남쪽 외딴 마을에서 월세 10만 원짜리 폐가를 얻어 혼자 살고 있었다. 시를 쓰고선 빨랫줄에 걸어 놨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빨랫줄에 걸린 시를 떼어내 출판사에 보내고는 고료 몇 만 원을 받아 쌀을 샀다. 그리고 또 시를 썼다.

 

시인은 이처럼 실제로 엄청 가난했었다.시인은 춥고 배고픈 일상과 시를 써서 근근이 생활해 나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지만, 뭔가 익살스럽고 낙천적인 게 느껴진다. 그리고 시인의 심성이 곱고 착하다는 게 느껴진다.시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노총각이 장가가는 날, 주례(남한산성 김훈 작가)는 주례사에서 함민복 시인은 가난과 불우가 생애를 마구 짓밝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익살스러운 중얼거림이 이상하게도 물욕에 잔뜩 찌든 내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혀 주고 씻어 준다.

정말 아름다운 시다.

 

🌹 문태준 시인의 해설

"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과 견주어 보아도// ()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

- 문태준 편저,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2, 민음사, 2008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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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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