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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좋은 시 가난한 사랑 노래

무명시인M 2022. 1. 17.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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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좋은 시 가난한 사랑 노래. Source: www. pexels. com

신경림 좋은 시 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시를 읽고 운다.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출처 :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 실천문학사, 1988.

 

🍎 해설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시를 읽고 흐느낀다.

시인이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이 있다.

 

술집에서 만난 한 청년이 고민을 털어놨다. 그 집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너무 가난해서 결혼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그 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이나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시인은 청년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둘이 결혼하면 주례도 해 주고 결혼 축시도 써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 말에 힘을 얻어서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고 한다.

 

결혼식은 어느 건물의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을 빌려서 했다. 청년이 노동운동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쫓기는 신세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온 시인은 두 사람이 겪은 마음고생과 인생의 쓰라림을 달래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썼다. 그때 탄생한 시가 바로 이 가난한 사랑 노래.

 

이 시의 주제는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우리 현실에 대한 분노와 자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시는 빈곤 현실에 대한 사회적 고발이라는 정치 삐라의 영역에 맴돌지 않았다. 이 시는 현실에 대응할 때 서정성이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 준 명시로 손꼽혀 왔다.

 

🌹 장석주 시인의 해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신경림의 절창 중 하나다. 가난은 애틋하고 아련한 것들을 낳은 바탕이고 곡절이다. 한 번이라도 가난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어본 사람이라면 이 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이라도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시를 읽고 눈물 한 점 떨구지 않을 수 없다. 가난에 대한 사실적 관찰은 오랫동안 신경림의 시적 관심의 표적이었다.

 

시골에서 내몰리고 서울에서도 저 변두리로 떠밀린 그의 이웃들이 궁핍 속에서 짓눌려 신음하며 살아가고, 그 자신이 오랫동안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가난의 덤터기를 쓴 채 멸실되어가는 1960년대 한국 농촌을 뒤덮은 극빈 체험을 거쳐 1970년대 서울의 달동네마다 널려 있던 도시빈민 체험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체화했다. 그는 가난한 이웃들과 가난이 만든 귀양살이를 함께 오롯하게 견디며 끈끈한 연대감을 찾아낸다. 그가 농무의 시 한 편을 통해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고,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도 우리뿐”(<겨울밤>)이라고 노래할 때 그 말에 담긴 뜻의 간곡함과 정직성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보다 가난의 생활 실감에 대해, 가난 속에서 억울함과 원통함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곡절을 잘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 노래하는 가난은 오늘의 가난이 아니다.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 따위가 나오는 걸 보면 자정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전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살아 있는 외로움을, 두려움을, 그리움을, 사랑을 증언한다.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여기의 현실 속에서 가난은 다 사라졌을까? 아니다. 가난은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이 가난에 지지 않고 끝끝내 그것을 견뎌내며 제 삶을 일군다.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사랑을 하고, 제 꿈을 키우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정직한 생활과 소박한 꿈은 부박한 소비사회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그리고 널리 퍼진 낭비적 행태를 추문으로 만든다.

- 장석주 시인, 언론 기고문(2014)에서 부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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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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