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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좋은 시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무명시인M 2021. 7. 11.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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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좋은 시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Photo Source: www.pixabay. com

장정일 좋은 시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유명한 시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 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 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을 자 버린 사람들이 나즈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출처 :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2002.

 

🍎 해설

스물두 살 고난의 삶을 살고 있는 청년 한 사람이 불우한 자기 자신보다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한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은 너무 빨리 늙고, 늘 배고픔과 실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출근과 스트레스와 피로와 시름과 술과 담배에 지쳐 있다. 그 청년은 세상의 모든 소외된 곳들에서 외롭게 칼잠 자는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을 쉬어 가게 만드는 사철나무 그늘이 되고 싶어한다. 청년은 사철나무 그늘 아래 앉아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먼저 보고, 위로와 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장 맑고 순수한 물맛을 골고루 나눠주고 싶어한다.

 

너무나도 혹독한 청소년기를 보내 온 시인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보내고 있다.

 

청년이 바빌론 강가에서의 노래를 들으며 흘렸던 눈물은

“When the wicked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required of us a song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침략자들이 노래를 하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노래를 이방인의 땅에서 부를 수 있겠냐구요

고단하게 살다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을 가진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고향을 강제로 떠나와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사람들이 투쟁적으로 부르는 이 대목은 아닌 것 같다.

 

“Let the words of our mouths and

the meditations of our hearts

Be acceptable in thy sight here tonight.

우리가 하는 말과 마음의 소원하는 것들을 오늘밤도 들어 주옵소서"

살다가 지친 사람들이 서로 위로를 나누고 서로에게 사철나무 한 그루가 되고자 하는 이 대목에  더 가까운 것 같다.

 

🌹 시인 장정일

장정일(1962년 생, 59세)은 시인이자 소설가 겸 극작가. 불우한 환경 속에 최종 학력이 중학교 중퇴임에도 불구하고, 삼중당 문고를 탐독 독학과 독서를 통해 문단에 등단하였다. 최연소의 나이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며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Photo Source: www.pixabay. com

바빌론 강가에서 노래 감상

https://jsksoft.tistory.com/1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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