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황인숙 좋은 시 칼로 사과를 먹다

무명시인M 2021. 7. 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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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좋은 시 칼로 사과를 먹다.Photo Source: www.pixabay. com

황인숙 좋은 시 칼로 사과를 먹다.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없었는가.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깔끝으로

한 조각 찍어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출처 : 황인숙, 칼로 사과를 먹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문학과지성사, 1994.

 

🍎 해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는 언니의 말이 있었다. 그런데도 시인은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이 남에게 칼로 사과를 찍어 먹인 즉 가슴 아픈 상처를 준 일들을 조용히 자책해 본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칼로 사과를 먹이듯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칼로 사과를 받아 먹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흔히 자신이 받은 상처만 기억하고 상처 준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있었던가. 이 시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더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지는 않았는지, 자신의 주변을 둘러 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만든다.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면 자신부터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하므로. 도한 우리는 아직 앞으로도 가슴 아플 일이 많으므로...

 

🌹 황인숙 시인은/ 시인 정끝별

황인숙 시인은 좀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는 방식도, 취향도, 생각도, 표정도, 말투도, 심지어 헤어스타일까지도. 황 시인의 절친한 후배 장석남 시인은 사석에서 이렇게 얘기한 적 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제 30년이 지나가는데도 정말 안 변하는 사람이 황인숙 선배라고, 그쯤이면 도()의 경지라고. 새들은 변하지 않는다, 늙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과다.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새처럼, 그는 명실상부한 '프리랜서'30여 년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맛깔스런 그의 산문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세든 집에서 혼자 산다. 책과 음악과 식도락과 고양이()와 그의 단짝 벗들과 더불어 산다. "마감 닥친 쪽글을 쓰느라 낑낑거리며/ 잡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부르짖는/ 가난하고 게으른 시인이/ 그 동네에도 살고 있을 것이다"('파두비바, 알파마!')

- 정끝별, 칼로 사과를 먹다 해설문에서 발췌, 조선일보 애송시 100편, 2008.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Photo Source: www.pixabay.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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