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좋은 시 사평역에서

곽재구 좋은 시 사평역에서, Photo Source; www. pixabay.com

곽재구 좋은 시 사평역에서. 어느 이름없는 시골 기차 간이역 대합실 정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출처 : 곽재구, 사평역, 시집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1983.

 

🍎 해설

중앙일보 1981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다. 시인은 등단 후 인기있는 시인이 되었는데 그의 수많은 시 작품 중 이 데뷔작 ‘사평역에서’가 제일 인기가 있다. 그만큼 이 시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우수작이다.

 

시골의 어느 이름없는 조그만 기차 간이역 대합실이 이 시의 배경이다.드라마처럼 스토리가 전개된다. 고달프고 못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서민보다 더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애환이 그려진다. 민중시인가, 저항시인가 독자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할 때 시인은 반전을 가져 온다. 이 시는 저항시가 아니다. 이 시는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그리움이나 외로움을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통해 서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에서 보는 것처럼 고달픈 사람뜰은 현실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름대로는 극복하려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에서 보는 것처럼 시인은 고달픈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면서도 고통이나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고 그들과 함께 희망과 사랑의 밤열차를 타고 있다.

 

우리도 어떤 의미에서 따뜻한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그 어떤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인의 한 마디

“많은 순간 절망보다는 희망을, 고통보다는 사랑을 노래하기 위하여 힘쓸 것이다.”

- 시집 사평역에서 작자 후기에서 발췌.

 

🌹나해철 시인의 한마디

“곽재구시인은 새벽 풀밭의 서정시인이다. '들쑥과 그리움,사랑과 희망의 시인'이다. 많은 순간 절망보다는 희망을,고통보다는 사랑을 노래한다. 들꽃같은 이웃들에게 한순간의 풋풋한 봄바람이 되는 시편이 되기를 소망한다.”

- 시집 사평역에서 나해철의 발문에서 발췌.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Photo Source; www.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