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좋은 시 전화. 상대방이 없는 줄 알면서도 전화를 한 적이 있는가요?
전화
/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출처 : 마종기, 전화, 변경의 꽃, 지식산업사, 1976.
🍎 해설
옛날 가정집 전화기를 알아야 이해가 된다. 발신자번호도 알 수 없고 응답 메시지 기능도 없다. 발신자를 표시하지 않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1234 다이알을 돌리고 신호음을 계속 보낼 수 있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전화를 겁니다. 시인의 간절한 외로움이 아름다운 시적 에스프리로 형상화되었다. 없는 줄 알면서도 왜 전화를 걸고 신호음을 계속 보낼까?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하기 위해서이다.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려서 그 전화 벨 소리가 그 방을 가득 채우고 그대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에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화를 건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고 톡 쏘아부칠까 봐 겁이 나서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하다라도 시인의 외로움과 간절한 그리움이 감동적으로 느껴진다.
🌹 마종기 시인의 말
“시인이 되는 첫째 조건은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다.
“시는 사랑의 한 표현 방법이고 체온 나눔이고 생환 훈련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한세상 시를 사랑하며 살았다.”
- 마종기 시집 『천사의 탄식』 뒷표지 글에서 발췌, 2020.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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