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 좋은 시 사랑. 사랑의 아픔에 대하여 노래한 좋은 시.
사랑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던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임의로 연 구분을 하였음.
❄출처 : 김용택, 사랑, 맑은 날, 창작사, 1986.
🍎 해설
김용택 시인은 사랑시를 많이 쓴다. 그는 "사랑 시는 절절하고 절실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삶의 핵심이지만 정작 시인들은 쓰기를 꺼리는 것 같다"며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정서를 전하는 게 시라면 그 정서 가운데 연애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며 "가장 중요한 시가 사랑 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사랑시는 상당히 길다. 사랑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대목인 이별의 아픔에 대해서 노래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이별의 아픔을 겪은 자는 성숙이라는 선물을 받는다고 노래한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담담한 마음으로 애인을 보낸다.
🌹 사랑의 아픔에 대한 김용택 시인의 말
사랑의 아픔 안에서 늘 사람은 더 커다란 사랑의 모습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을 통해 세상을 얻는 것이고.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잖아요? 이건 개개인에게 있어서 '혁명'이지요. 어제의 것들이 오늘 새롭게 보이는 거고, 종교적으로 보면 이건 부활, 사랑은 곧 '부활'이지요, 그런 면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위대한 거지요
사랑으로부터 아픔과 상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것들을 이겨낼 때 너무 교과서적인 말이지만 사랑의 아픈 상처가 더 큰 사랑으로 인도하는 나의 삶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최대한 할 수 있는 데로 정성을 다해 사랑을 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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