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신경림 좋은 시 농무

무명시인M 2021. 5. 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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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좋은 시 농무. Photo Source: www.unsplash.com

신경림 좋은 시 농무.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 : 농악춤

출처 : 신경림, 농무, 시집 농무, 월간문학사, 1973.

 

🍎 해설

이 시는 19601970년대 산업화의 와중에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삶의 방식이 붕괴되어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민요적 리듬과 쉬운 시어를 구사하고 있다.

 

농촌의 절망과 농민의 울분을 고발, 토로하고 있으면서도, 그 울분이 선동적이거나 전투적인 느낌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농민들의 격한 감정을 직접적인 서술로 표출하면서도 농무의 동작이나 농악기의 소리로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아름다운 서정성과 뛰어난 문학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시인이 시를 알고 있다는 증거다.

 

🌹 나는 이념을 앞세운 시를 쓰려하지는 않았다.

기자 :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는 시가 쓰는 입장에서는 더 어려울 것이다. 어떤 창작과정을 거쳐 그러한 경지에 도달했는가.

 

-신경림: 민요·판소리 등 우리의 전통적 가락을 활용하려 애썼다.

사실 쉬운 시에서 드러나지 않은 형식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정선아리랑 가락을 찾아 정선으로, 뗏목꾼들의 노래를 찾아 강으로, 장꾼들의 가락을 찾아 장터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 가락들마다 사연들은 좀 많은가. 민중들의 한이 고스란치 배어있는 노래들 아닌가. 그러나 시는 그 가락을 뛰어 넘어야한다. 그 한도 뛰어넘어 오늘의 현실을 드러내야 한다. 민중의 핏속을 흘러온 가락과 현실의식을 접목시키는 데에는 그만한 어려움이 따랐다.

 

기자: 80년대의 민중시들이 오히려 민중정서와는 멀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중문학을 이끌고 있는 한사람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일정한 시적 훈련을 안 거친 젊은 시인들이 과격한 목소리만을 가지고 나온 탓이다. 민중시라도 우선 시는 시여야 한다. 시대적 사명에 너무 투철한 나머지 시적 진실에는 허름한 시인들도 많았다. 나는 시대적 상황이 잘 반영된 서정시를 쓰려 노력했지 이념을 앞세운 시를 쓰려하지는 않았다. 민중시가 큰 흐름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서를 먼저 익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을 현실대로 나름의 정서를 갖고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파장이나 폐광등에서처럼 나는 막을 내리고 스러지는 것들에 기질적으로 친밀감을 갖고 있다. 타고난 나의 이 기질에 충실하며 민초들의 건강한 삶의 모습과 정서를 그들의 가락으로 노래해 나가겠다.

신경림 시인의 언론 인터뷰에서 발췌.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Photo Source: www.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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