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좋은 시 봄날. 코로나19에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왔다.
봄날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칼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 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 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출처 : 이문재, 봄날,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
🍎 해설
중국집 배달원이 대학 캠퍼스에 음식 배달 왔다가 갑자기 철가방을 내려놓고 막 피기 시작한 목련꽃을 휴대전화 사진기로 찍고는 정문으로 나갔다. 계란탕같이 순한 봄날 풍경이다. 시인은 바쁜 현대인도 봄날에는 잠깐 목련꽃을 사진기에 담는 여유와 순박함이 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형상화시켰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중국집 배달원에 대한 애잔한 마음도 불러 이르킨다.
코로나19에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 봄에는 꽃구경은커녕 마스크를 쓰고 오히려 꽃을 피해 다녀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예쁜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꽃을 감상하는 모드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이 ‘중국집 배달원이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주춤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철가방인 휴대용 노트북(미스틱그레이, 레노버, 맥북 등등)을 잠시 내려놓고 휴대폰으로 백목련 사진을 한 컷 찍어 보시기 바란다. 배달할 곳이 있지 않는가? 바쁘고 괴로운 중에도 순간의 여유와 성찰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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