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좋은 시 송가. 한국 처녀는 아름다운가.
송가
/박목월
저승에 가더라도
그것만은 못 잊을 걸.
펄렁하고
담모퉁이로 사라지는
남치맛자락과
바람에 파닥거리는 흰 옷고름과
눈물 같은 달밤의 담그늘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흰 동정.
산수좋기로 이름난
한국의 처녀야
흐르는 가람마다
감아 빗은 머리채......
이승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기나긴 그 등솔기에
한 번만 얼굴을 묻게 해다오
❄출처 : 박목월, 송가, 박목월 시전집, 2003.
🍎 해설
*송가(頌歌) : 찬양하는 노래
남치맛자락 : 남빛 치마 자락(남빛은 짙은 푸른 색)
가람 : 강
등솔기 : 저고리의 등 가운데 부분을 천으로 맞붙여 꿰맸을 때 생기는 선
이 시는 특정 여성에 대한 사랑의 노래가 아니다. 더구나 한복 예찬도 아니다. 한국 처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의 노래다.
남빛치마 펄렁 한복을 입고 모퉁이로 사라지는 한국 처녀의 모습은 ‘저승에 가서라도 못 잊을걸’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시적 에스프리다.
‘감아 빗은 머리채 밑의 기나긴 그 등솔기에 한 번만 얼굴을 묻게 해다오’란 마지막 시구에서 한국 처녀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을 감동적으로 예찬하고 있다.
한국 처녀에 대한 송가와 차원은 다르지만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추억, 어머니에 대한 송가도 놓칠 수 없다.
어머니의 언더라인
/박목월
유품으로는 그것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금잔디를 덮고 양지바른 곳에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의 유품은
그것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마다 헐어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어놓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이순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지고하신 분을 뵙게 한다
어두운 밤에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
산수좋기로 이름난 한국의 처녀야
이승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기나긴 그 등솔기에
한 번만 얼굴을 묻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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