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좋은 시 봄. 봄은 조용히 온다. 봄은 항상 짖꿎은 웃음을 띠고 언제나 하루 아침에 문득 온다.
봄
/최하림
영화 20도를 오르내리는 날 아침
하두 추워서 갑자기 큰 소리로
하느님 정말 이러시깁니까 외쳤더니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은 공기 조각들이
부서져 슬픈 소리로 울었다
밤엔 눈이 내리고 강 얼음이 깨지고
버들개지들이 보오얗게 움터 올랐다
나는 다시
왜 이렇게 봄이 빨리 오지라고
이번에는 지난번 일들이
조금 마음이 쓰여서 외치고 싶었으나
봄이 부서질까 봐
조심조심 숨을 죽이고
마루를 건너 유리문을 열고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봄이 왔구나
봄이 왔구나라고
❄출처: 최하림, 봄, 겨울 깊은 물소리, 열음사, 1987.
🍎 해설
봄은 만물이 탄생하는 계절이다. 생명이 부활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봄은 조용히 온다. 봄은 항상 짖꿎은 웃음을 띠고 언제나 하루 아침에 문득 온다.
이번에 오는 봄은 유달리 조용히 오고 있다. 산수유 축제, 매화꽃 축제, 벚꽃 축제 등 전국 각지의 유명한 꽃 축제가 거의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 봄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최하림 시인은 ‘봄이 부서질까봐 조심조심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라고 노래했다. 시인이 살아 있을 때 마치 오늘을 예견하고 쓴 시 같다. 모든 것이 귀하고 소중하므로 늘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헤아리고 배려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코로나19의 고통으로 각박한 현실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잊거나 간과하기 쉽다. 그런 요즘일수록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존중하면서 시인이 호소한 새 봄을 맞이하자. 수줍은 소녀처럼 설레는 마음이 필요하다.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다가오는 봄을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맞이하자.
봄이 부서질까 봐
조심조심 속삭였다
아무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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