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좋은 시 연탄 한 장, 국민 애송시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의 철학적 배경이다.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출처: 안도현, 연탄 한 장,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1994.
🍎 해설
요즘에야 전기, 가스 등의 연료가 대세지만 춥고 배고픈 시절에는 연탄 없으면 살지 못했다. 촛불은 스스로 제 몸을 태워서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 연탄은 스스로 제 몸을 태워서 인간을 살렸다.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이 되지 못하면서 살았다. 살아남기 위하여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다. 옆에 누가 넘어져서 피를 흘리는지 모르고 내 일만 챙기면서 살아 왔다.
안도현 시인은 긍휼의 시인이다. 그의 어느 시에도 긍휼의 정신이 배어 있다. 그는 긍휼의 정신을 아름다운 시어와 감동적인 시적 에스프리로 노래한다. 이 시도 그러한 시다.
워낙 춥고 배고픈 시절에는 긍휼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희망적인 변화가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한 복판에 긍휼의 시인 안도현이 있다.
쉑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이렇게 말한다.
“긍휼은 강요받아 베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단 비가 땅 위에 떨어져 내리듯 그렇게 내리는 것이다. 그 덕은 단발적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다. 그것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모두 행복하게 한다.”
제 몸을 불사르고 재로 남아 다시 으깨어지는 헌신. 이 시의 속편 같기도 한 국민 애송시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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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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