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이성부 좋은 시 벼

무명시인M 2021. 3. 14.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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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좋은 시 벼.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이성부 좋은 시 벼. 참여시인 이성부 시인의 대표작품이다.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출처: 이성부, , 우리들의 양식, 민음사, 1995.

 

🍎 해설

 

이성부 시인(1942~2012)은 참여시인으로서 사회반영적 주제를 많이 다루어 민중시인이나 참여문학 계열의 작가로 분류고 있다. 그러나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놓지 않고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도 그의 별세를 안타까워 하는 팬들이 많다.

 

그의 시 속에는 지난 70~80년대 산업화시대의 역사 속에서 가혹하게 짓밟히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껴안고자 하는 일관된 의지가 나타나 있다. 그의 시에는 억압과 소외의 현실에 대한 고발과 함께 패배감을 극복하려는 현실 극복의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 있다.

 

이렇게 저항적인 현실 인식을 밑바닥에 깔고 있으면서도, 그의 시에 등장하는 슬픔, 어둠, 기다림, 분노 등은 기쁨, , 만남, 사랑 등으로 연결되는 시적 에스프리를 갖고 있다.

 

그는 시적 서정성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분노와 사랑을 동반시킨다. 그의 대표작인 이 벼에서도 그렇다. 비록 벼는 피흘리며 베어지지만, 자기 희생을 통해 이룩한 넓디넓은 사랑에 만족하며 조용히 쓰러진다. 이 쓰러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아는 벼의 고귀한 희생을 거쳐 새로운 벼가 탄생된다는 걸 민중들은 안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삶의 동반자로서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한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깊이 익어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그의 시는 분명히 삐라나 투쟁선언문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의 시에는 미래에 대한 의지와 사랑이 있다. 또한 동반자들에 대한 따뜻한 포용과 관용이 있다.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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