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소풍. 자식이 앞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견딜 수 있는 힘은?
소풍
/나희덕
얘들아, 소풍가자.
해 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 먹고
빈 밥그릇에 별도 달도 놀러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보다.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 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저 노을빛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이 바위에 둘러앉아 먹는 밥을
잊지 말아라, 그 기억만이 네 허기를 달래줄 것이기에 🍒
❄출처 : 나희덕 시집, 『그녀에게』, 예경, 2015.
🍎 해설
이 시에서 나오는 소풍은 가족과 함께 흔히 가는 소풍이 아니다. 어머니가 애들이 앞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견디며 살 수 있는 그런 기억, 그런 힘을 주려는 소풍이다.
시인 자신이 어렸을 때에 받았던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 중에 하나인 기억을 자식들에게 주기 위한 소풍이다. 어머니가 차려 준 밥상보다 더 큰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시인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자식들에게 어머니가 주셨던 사랑을 베풀며 자식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힘을 주려는 내용이다.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결국 내가 먹고 자란 건 어머니가 자신의 온 몸을 희생하며 자식을 키우던 사랑이었다. 이제 어렴풋이나마 내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안다면 나도 내 몸으로 자식들을 위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음을 안다. 사랑의 대물림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얘들아, 소풍가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보다.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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