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무명시인M 2023. 9. 3.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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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긍휼의 시 세계를 개척한 한국시단의 기념비적인 작품..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밤에 그 방에 켜질 헌 삼성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 한 구석 힘주어 꼭 짜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
 
❄출처 :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 해설

이 시는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워서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 한 할머니를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인은 어려운 삶을 견디어 내고 있는 소외계층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있다.
 
폐지를 줍다가 거리에 차라도 지나가면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더러운 시멘트벽의 거미처럼 바싹 붙거나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납작 엎드린 모습이 구겨진 종이 같아 서글프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할머니가 구겨지는 반복이 시인을 슬프게 한다.
 
굽은 허리와 아픈 다리를 끌고 허름한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어둠이 할머니를 맞이한다. 밤이 깊었지만 하루 종일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밥이라도 한술 뜨려니 기울어진 싱크대와 찌그러진 냄비가 씻기지도 않은 채 아침에 있던 그대로다. 대충 설거지를 하고 식은 밥과 짠지로 허기를 메우는 시간은 이미 자정도 넘어 서 있다. 방을 닦고 걸레를 빨아서 방 한 귀퉁이에 놓은 뒤 헌 삼성 텔레비전을 튼다. 잠시 고독을 잊으려 애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이 긍휼(compassion)의 정신이다. 긍휼이란 연민이나 동정보다 한 차원 높은 자비의 정신이다. 미국에는 긍휼이 살아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궁휼이 살아 있어야 사회가 건전하게 전진할 수 있다.
시인은 가장 낮은 자세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소외된 삶의 풍경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는 이 시가 아름다운 긍휼의 시 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한 한국시단의 기념비적인 역사적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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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빼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늦밤에 그 방에 켜질 헌 삼성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 한 구석 힘주어 꼭 짜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상자를 접는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벽에 바짝 붙어 선다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방 한 구석 힘주어 꽉 짜 놓은 걸레를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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