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정현종 견딜 수 없네

무명시인M 2023. 2. 13.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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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견딜 수 없네.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치유법.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이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출처 : 정현종 시집, 견딜 수 없네, 시와 시학사, 2003.

 

🍎 해설

시인은 '견딜 수 없네'라는 동어반복의 운율 속에서 우리 인간들의 근원적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흘러가는 것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이러한 인간사의 무상함과 덧없는 생의 쓸쓸한 것들이 바로 우리의 근원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그것을 끌어안는 거대한 포용을 보여주고 있다. 슬픔을 피하는 게 아니라 슬픔과 정면대결한다. 슬픔을 슬픔으로 쓸어내리고 치유하고자 하는 관조와 달관의 유연성을 노래한다.

 

박완서 작가는 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시인의 견딜 수 없네모든 것은 상흔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처럼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것’ ‘흐르고 변하는 것을 되새겨보면 죄다 상처 자국이다. 상흔이다. 고통을 피하려는 부질없는 노력 대신 가혹한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직시하는 게 때론 치유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에게는 무엇이 견딜 수 없습니까? 어찌 보면 견딜 수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아보자는 역설처럼 들린다. 또 어찌 보면 적당히 견딜 수 있는 그 무엇은 스스로 찾거나 만들어 나가라는 말로도 들린다. 시는 논설문이 아니다. 나름대로 해석하여 허무주의나 감상적인 무드에 빠지지 않고 흘러가는 삶을 응시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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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의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화하는 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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