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무명시인M 2022. 12. 26. 07:55
728x90
반응형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좋은 시 성북동 비둘기.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의 비교 분석.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출처 : 김광섭 시집, 성북동 비둘기(4시집), 범우사, 1969.

 

🍎 해설

이 시는 1960~1970년대의 산업화가 가져다 준 자연파괴와 인간소외, 그리고 인간성 상실이라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발 논리에 밀려 목숨과도 같은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힘없는 비둘기의 딱한 처지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채석장의 비둘기로 상징된 현대인이 기계문명에 의하여 점점 살벌해지고 속화해가는 현실에서 순수한 자연과 평화가 발붙일 곳 없음을 개탄함으로써 평화로운 세계를 갈구하는 생각을 형상화하였다.

 

결국, 김광섭 시인은 인간 스스로 창조한 물질문명이 자연의 훼손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인간성마저 상실한 결과를 가져왔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태계의 소중함과 사랑,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시는 사회고발적 시라고 보기 보다는 인생과 자연과 문명 등의 근원적 문제들이 문명비평적 차원에서 형상화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의 비교

어제(2022.12.25.) 조세희 작가가 별세하였다.

조세희 작가의 대표작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네 가족을 통해 1970년대의 산업화의 그늘에 신음하는 도시 하층민의 삶을 그렸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장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1970년대 빈부 격차와 사회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재개발로 인해 행복동 판자촌에서 쫓겨나게 된 난장이 가족의 절망적인 현실은 우리 사회 불평등과 계급 갈등과 같은 병리적 세태를 환기한 바 있다.

 

조세희 작가는 생전 "1980년대 사회에 대한 절규를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는 1960~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을 비판한 사회고발적 시는 아니다. 물론 이 시는 1960년대의 집을 잃어가고 있는 채석장 비둘기, 산업화의 그늘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사회고발적 시라고 보기 보다는 인생과 자연과 문명 등의 근원적 문제들이 문명비평적 차원에서 형상화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응형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새 비둘기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반응형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삼석 네거리 빵집 앞  (2) 2022.12.29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0) 2022.12.27
김종길 성탄제  (0) 2022.12.25
나태주 너를 아껴라  (0) 2022.12.22
오광수 12월의 독백  (0) 202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