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좋은 시 성탄제. 성탄절에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해 주는 시.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출처 : 1955년 4월 『현대문학』에 발표. 김종길 시집, 『솔개』, 시인생각, 2013.
🍎 해설
소년시절의 어느 날 밤, 나는 심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열에 시달리는 어린 나를 위해 아버지는 흰 눈을 헤치며 산수유 열매를 따오셨다. 산수유 열매는 고열에 약효가 있다. 그 산수유 열매를 찾아 혹한 속의 눈 덮인 산을 헤매셨을 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던 나는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이 나이에도 나는 아버지의 그 서느런 옷자락, 헌신적인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병든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아버지가 눈 덮인 산 속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오던 그 밤을 나는 사랑과 헌신의 성탄제의 밤과 같은 의미로 생각한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들도 이 시를 읽으면서 가족의 소중함,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0) | 2022.12.27 |
---|---|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0) | 2022.12.26 |
나태주 너를 아껴라 (0) | 2022.12.22 |
오광수 12월의 독백 (0) | 2022.12.21 |
정호승 폭포 앞에서 (0) | 202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