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재 좋은 시 오래된 기도. 교회나 사찰에 가서 하는 기도만 기도가 아니다.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출처 :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 2014.
🍎 해설
기도는 교회나 산사에 가서 하는 기도만 기도가 아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하는 기도는 진정한 기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기도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바로 기도라고 말한다. 기도란 만물 앞에 나의 존재를 겸허하게 낮추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때 차분해진 마음이 되어 비로소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그 마음이 바로 기도라고 말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기도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을 하는 오늘, 잠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둔 사람을 생각해 보는 것도 기도가 될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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