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조지훈 명시 낙화

무명시인M 2022. 2.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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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명시 낙화. Source: www. pexels. com

조지훈 명시 낙화. 조지훈 시인의 명시 가운데 하나다. 정치인들이 흔히 낭송한다.

낙화(落花)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출처 : 조지훈, 조지훈 전집1, 나남출판 , 1996.

 

🍎 해설

이 시의 방아쇠는 첫 구절인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이다.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시간이 되어서 진다.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진다.

이 시는 이른 아침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느낀, 자연의 섭리와 삶의 무상함과 비애를 극히 절제된 시어로 담담하게 노래한 명시다.

 

이 시에서 독자들은 지는 꽃에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꽃 지는 그림자가 달빛 아래 미닫이에 붉게비친다. 시인은 방 안의 촛불을 꺼야만 어둠 속에서 꽃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노래한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마지막 구절은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자신의 삶까지 꽃의 일생으로 보고 있으니 꽃이 지는 아침은당연히 울고 싶어라란 시어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반항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에 맡기겠다는 그 어떤 달관과 관조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이 시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노래한 이형기 시인의 낙화와 함께 정치인들이 물러갈 때 흔히 낭송하는 시이기도 하다.

 

조지훈 시인은 낙화를 자신의 작품 중에서 시로서는 어떨지 모르나 가장 애착이 가는 시라고 여러 번 말했다.

* 우련 붉어라 : 형태가 약간 나타나 보일 정도로 희미하게 붉다는 뜻이다. 그저 붉은 빛이 희미하게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표현이다.

 

🌹 정끝별 시인의 해설

천지에 꽃 피는 소리 가득하다. 등성이는 등성이대로 기슭은 기슭대로 봄꽃들 넘쳐난다. 껍질만 살짝 문질러도 생강 냄새가 확 풍기는, 산수유꽃 닮은 생강나무꽃, 사람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 개살구꽃, 제비꽃, 메꽃, 달맞이꽃, 애기똥풀꽃, 쑥부쟁이꽃 본 적 있다. 이 꽃들의 소요! 사람 홀린다는 흰 동백꽃, 바람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린다는 꿩의바람꽃, 아침이면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해가 나면 자줏빛 꽃잎을 활짝 연다는 바람난 처녀꽃, 엘레지꽃, 홀아비바람꽃, 너도바람꽃, 며느리배꼽꽃은 아직 못 보았다. 저 꽃들의 고요!

 

"어진 이는 만월(滿月)을 경계하고/ 시인은 낙화를 찬미하나니/ 그것은 모순의 모순이다"(한용운 모순)라고 했거늘, 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속의 분별과 속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리라. 조지훈(1920~1968) 시인은 섭리로서의 소멸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을 보여준 시인이다. '지조(志操)'를 지킨 논객이자, '주정(酒酊)'의 교양과 '주격(酒格)'의 품계를 변별했던 풍류를 아는 학자였으며, 무엇보다 낙화를 찬미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이 시는 화두처럼 시작한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꽃은 바람에 지지 않는다. 피면 지고, 차면 이울기 마련이라서, 꽃은 꽃의 시간이 다해서 지는 것이다. 저 꽃을 지게 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밤을 아침으로 바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촛불이 켜진 방안에서, 주렴 밖으로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있다. 아니 꽃이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리라. 돋았던 별이 하나 둘 스러지는 새벽, 먼 산의 소쩍새가 울고, 뜰에는 꽃이 지고 있다. 달빛이 고즈넉했던지 꽃 지는 그림자가 미닫이에 비친다. 방 안의 촛불을 꺼야, 지는 꽃이 빛을 발한다. 인간의 촛불을 꺼야, 어둠 속에서 목숨이 지는 자연의 꽃이 내는 소리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그는 범종소리를, 과실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비유한 적이 있다. "허공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 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범종(梵鐘))이라고. 그 새벽에도 꽃이 지는 소리 웅 웅 웅 웅…… 아득했으리라. 흰 창호지문을 물들이는, '우련(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붉은, 낙화의 그림자! 지는 꽃의 그림자를 나는 이 시에서 처음 배웠다. 꽃이 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꽃이 다시 보인다는 것도. 밤새 진 꽃들 한 치는 쌓이리라. 꽃은, 진 후에 더욱 꽃이기에, 지는 꽃의 슬픔을 이리 높고 깊게 맞을 일이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과묵한 슬픔 앞에 목이 멘다.

- 정끝별 시인, 언론 기고문(2008)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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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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