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명시 그리움.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유명한 명시다.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백무선(白茂線) : 함경북도 백암과 무산을 잇는 산림 철도.
❄출처 : 이용악, 그리움, 이용악 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8.
🍎 해설
이 시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해방 직후에 시인이 혼자 상경하여 서울에서 외롭게 생활하다가 함경북도 무산의 처가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였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아름다운 시적 리듬으로 이 시는 시작한다.
시인은 8.15 해방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혼자 상경하였다, 시인으로서는 함박눈이 새 시대를 위한 하늘의 축복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시인은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라고 노래하였다.
자신이 지금 머물고 있는 서울도 잉크병마저 얼게 할 정도로 추운데, 춥기로 유명한 그 곳 무산의 가족들은 얼마나 추울까라고 걱정하는 시인의 마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시에 이런 그리움은 우리에게 찬란한 감동의 기쁨을 선물한다, 명시다.
🌹 문태준 시인의 해설
이용악 시인은 함북 경성이 고향이다. 그는 동향의 선배 시인이었던 김동환 시인이 북방을 노래한 이후 북방으로 유이민의 길에 오른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그곳의 처참한 현실을 줄곧 노래했다. 시인은 첫 시집 '분수령'의 맨 앞에 실은 시 '북쪽'에서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라고 썼다.
산맥이 얼어붙는 날 함박눈은 쏟아지고, 벌판과 협곡에 눈보라가 휘몰아쳐 가고, 시인은 두고 온 사랑을 생각한다. 두메산골에 두고 온 가난한 사랑을 애통해하며 떠올린다. 시인의 마음은 눈보라를 헤치고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으로 연거푸 내달린다. 객지의 찬 방에서 자다 깨어 이 시를 지었을 시인을 떠올린다. 슬픈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이 높은 그리움에 내 가슴이 얼 것 같다.
- 문태준 시인, 언론 기고문(2014년)에서 발췌.
🌹이문재 시인의 감상평
인사동 한 카페 벽에 이 시가 적혀 있었다. 검정 매직으로 쓴 글씨는 백무선 기차보다 빨라 보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김지하 시인이 써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를 중얼거리다 보면 이용악 시인 대신, 김지하 시인의 깊은 목소리와 힘찬 글씨가 떠오른다. 부디 암송해 보시기를. 하지만 술 마시고 외우지는 마시기를. 그랬다간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 이문재 시인, 언론 기고문(2006년)에서 발췌.
🌹 이용악 시인
이용악(李庸岳,1914 ~ 1971년)은 월북시인이다. 1930년대에는 서정주, 오장환과 함께 3대 시인으로 불렸던 뛰어난 시인이다. 백석 시인과 함께 북한 출신인데, 백석 시인만 널리 알려지고 이용악 시인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표작으로는 《북국의 가을》, 《풀벌렛소리 가득차 잇섯다》, 《낡은 집》, 《슬픈 사람들끼리》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등이 있다. 이 블로그에서는 시인의 시를 몇 편 더 소개할 계획이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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