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명시 산이 날 에워싸고.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인가요?
산이 날 에워싸고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
❄출처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사위어지는 : 불이 사그라져서 재가 되는
🍎 해설
이 시는 우선 시적 리듬감이 아주 좋다. ‘산이 날 에워싸고 ~ 살아라 한다’를 반복하는 리듬감은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아름답다.
시인은 산을 의인화하여 산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산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삶이 행복한지를 묻는다. 씨를 뿌리며 밭을 갈며 아들 낳고 딸 낳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살자고 말한다.
또 언젠가는 그믐달처럼 서서히 쇠약해 지며 생명의 빛을 잃게 될 것을 수긍하며 살자고 말한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고향과 자연을 찾아 노래한 박목월의 시는 각박한 현실에 시달렸던 이들에게 현실도피(자연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가는 힘을 주었다.
🌹 나태주 시인
이 시는 나를 시인으로 이끈 시다
중학교 2학년 겨울의 일이다. 돈 대신 쌀 몇 말을 하숙비로 주고 몇 달 동안 서천 읍내에서 하숙 생활하던 시절이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가난하기만 하던 때.
찐빵 하나가 먹고 싶어 빵집 앞을 서성이던 때. 그 시절 함께 하숙하던 친구가 읽어준 시가 바로 박목월 시인의 「산이 날 에워싸고」 바로 이 시였다. 왜 나의 마음이 여기 왔을까, 생각했다.
다만 가슴이 콱 막혔다. 그것은 답답함이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그 뒤범벅이 된 어떤 기쁨 같은 것이었다. 환희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시인이란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는 나를 시인으로 이끈 시다.
- 나태주 엮음,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앤드), 2020에서 발췌.
산이 날 에워싸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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