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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좋은 시 높새바람같이는

무명시인M 2022. 2. 3.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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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좋은 시 높새바람같이는. Source: www. pexels. com

이영광 좋은 시 높새바람같이는.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높새바람같이는

/이영광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

 

출처 : 이영광 시집, 아픈 천국, 창비 , 2010.

 

🍎 해설

'높새바람'은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부는 바람이다.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부는데 동쪽 산을 타고 오르며 품고 있던 수증기를 거의 비로 내려버려 서쪽 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온도가 높고 매우 건조하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높새바람같이' 잘 걷는 몸과, 살아지는 마음과, 문지르면 피가 흐르는 생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면 높새바람의 방향과 온도가 바뀌듯 사랑의 열병도 식고 이별을 맞이한다.

 

비록 사랑은 끝났지만, 당신으로 인해서 더 빛이 났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을 과연 잊을 수 있을까. 살아내야 할 생 앞에 나는 그저 넝마처럼 구겨져 있는데, 아무리 다짐해도 그 사랑은 포기가 되지 않고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 사랑했던 당신이 아니라, 당신을 온 몸으로 사랑하고 있는 나의 옛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은 나에게 언제나 긍정적인 힘을 주는 것 같다. 이 어려운 지금도...

 

🌹 박준 시인의 해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상대가 내게 품고 있는 마음이 더 작을 때 우리는 짝사랑이라는 병에 든다. 이 병은 열병이다. 하지만 짝사랑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상대를 가까이하는 마음보다,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클 때 생긴다. 이럴 때 우리의 눈에 비치는 상대는 더없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다행스럽게도 상대와 나의 감정이 비슷하게 차오를 때 우리는 연애와 사랑의 세계로 전환된다. 연애의 세계에서 그리고 사랑의 세계에서 관계는 더없이 충만하며 인자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감정이라는 불안한 층위에 겹겹이 쌓아 올려진 이 세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고 결코 영원하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는 곧 관계의 죽음을 맞는다.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즐거웠던 한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때 나의 눈앞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던 연인이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연인의 정한 눈동자에는 나의 모습이 설핏 비쳐 보인다. 어쩌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 사랑했던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나의 옛 모습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상대와의 헤어짐이라는 사건만으로는 울지 않는다. 다만 순수하고 맑았던 오래전 나 자신과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운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좋아지던 시절에서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왔다.

- 박준 시인, 언론 기고문(2016)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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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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