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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좋은 시 혼자 가는 먼 집

무명시인M 2022. 2.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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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좋은시 혼자 가는 먼 집. Source: www. pexels. com

허수경 좋은 시 혼자 가는 먼 집. 사랑을 잃은 사람이 왜 킥킥이라는 소리를 낼까?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출처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2000.

 

🍎 해설

킥킥이라는 시어의 파격성이 우선 호기심을 잔뜩 불러 일으킨다. 왜 킥킥인가? 킥킥이 시어로 적합한가? 실소인가? 미소인가?

 

킥킥'이라는 이 신조어 시어 속에는, 비극인 줄 알면서도 그 비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사랑을 잃은 사람의 내면 갈등이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허수경 시인은 특출한 언어감각, 전통적 서정에 실천적 역사의식을 덧입힘으로써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20대에 내놓은 두 시집으로 일약 한국 시의 중심으로 진입한 허수경 시인은 그러나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돌연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 곳에서 고고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암 투병 중에 향년 54세로 이 시의 제목처럼 갔다. 먼 집으로. 혼자서.

 

🌹 정끝별 시인의 해설

'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 허수경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이고 병()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참혹은 '당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총체적 참혹이다. 사랑을 떠나 보낸 실연의 참혹, 아버지를 여읜 망부의 참혹, 신념을 잃은 한 시대의 참혹.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죄다 마음에 묻어야 하는 당신들이다. 그런 당신을 웃으면서 울면서 혹은 취해서 부르는 이 시의 언어는 언어 이전이거나 언어 이후다. 단속적인 말줄임표와 쉼표,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킥킥'이라는 의성어에는, 참혹인 줄 알면서도 참혹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자의 내면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나와 당신, 사랑의 마음과 마음의 무덤, 환후와 치병이 '각각 따로'이기에,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과 사랑과 상처와 그 상처의 몸이 모두 적요이고 울음이다. 그런 울음을 짊어지고 가는 시인, 세간의 혼몽을 잘 먹고 잘 노래하는 시인이야말로 자신의 불우함을 다해 노래하는 시인의 지복(至福)일 터, 이 시는 그 지복의 한 자락을 걸쳐 입고 있다.

 

허수경 시인은 울음 같은, 비명 같은, 취생몽사 같은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독일로 휘리릭 날아가버렸다. 1990년대 초반이었고, 시인의 생부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였다. 동안(童顔), 대책 없는 맨몸이었다. 고고학을 공부한다 했다. 잘살고 있다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지 벌써 16년째다. 당신당신이라는 말은 언제 불러도 참 좋다, 그리고 참 참혹하다, 킥킥 당신.

- 정끝별·시인, 언론 기고문(2008)에서 발췌. 정끝별 시인은 허수경 시인이 별세 하기 전에 이 해설문을 썼다.

 

🌹 허수경 시인

1964~2018, 향년 54.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자라고 대학 역시 그곳에서 다녔다. 오래된 도시, 그 진주가 도시에 대한 원체험이었다. 낮은 한옥들, 골목들, 그 사이사이에 있던 오래된 식당들과 주점들. 그 인간의 도시에서 새어나오던 불빛들이 내 정서의 근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밥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고 그 무렵에 시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봉천동에서 살다가 방송국 스크립터 생활을 하면서 이태원, 원당, 광화문 근처에서 셋방을 얻어 살기도 했다.

 

1992년 늦가을 독일로 왔다. 나에게는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셋방 아니면 기숙사 방이 내 삶의 거처였다. 작은 방 하나만을 지상에 얻어놓고 유랑을 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살면서 공부했고, 여름방학이면 그 방마저 독일에 두고 오리엔트로 발굴을 하러 가기도 했다. 발굴장의 숙소는 텐트이거나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임시로 지어진 방이었다. 발굴을 하면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도시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도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이 지상에서 영원히 거처하지 못할 거라는 것도 사무치게 알았다.

 

서울에서 살 때 두 권의 시집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을 발표했다. 두번째 시집인혼자 가는 먼 집의 제목을 정할 때 그것이 어쩌면 나라는 자아의 미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독일에서 살면서 세번째 시집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를 내었을 때 이미 나는 참 많은 폐허 도시를 보고 난 뒤였다.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다. 물질이든 생명이든 유한한 주기를 살다가 사라져갈 때 그들의 영혼은 어디인가에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뮌스터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공부하기를 멈추고 글쓰기로 돌아왔다. 그뒤로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마루호리의 비밀, 번역서 슬픈 란돌린』 『끝없는 이야기』 『사랑하기 위한 일곱 번의 시도』 『그림 형제 동화집등을 펴냈다.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이육사문학상을 수상했다. 2018103, 독일에서 투병 중 별세했다.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2020, 출판사의 저자 소개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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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란 말

참 좋지요

Source: www. pexels.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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