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좋은 시 부부. 부부는 어떻게 함께 살아 가야할까요?
부부 /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출처 : 함민복, 부부,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
🍎 해설
부부는 혼자서는 들 수 없는 길고 무거운 밥상을 함께 들고 가야한다. 부부는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하는 사람의 편을 살펴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배려와 양보를 해야 한다. 그러나 부부는 끝이 중요하다. 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끝까지 정다운 부부의 애정을 유지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부부는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또 한 발.누가 먼저 앞서 가거나 빠르게 가라고 재촉하지 말고 상대방을 변함없이 존중해 줘야 한다.
🌹시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
☘ 탄생 배경
함민복 시인은 40세 노총각 때 후배 주례를 선 적이 있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양복을 사 입었다. 그날 주례사를 다듬어 쓴 시가 이 '부부'다.
―노총각 때 어쩜 그렇게 절절한 시를 썼습니까.
"친구들이 부부싸움을 하고 노총각인 나한테 상의를 많이 했어요. 부담이 없어서 그런가. 이런 식으로 상담해주죠. 집에 들어가면서 바로 잘못했다고 하면 어떡하냐. 너 혼내킬려고 별별 걸 다 연구하고 있는데 들어가면서 바로 미안해, 그럼 안 되지. 처음엔 좀 퉁기는 척하다가 나중에 '그런 것도 모르고 난…' 이렇게 사과해야지..."
☘ 김훈 작가의 주례사
함민복 시인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50세 때 결혼을 했다. 신부도 50세였다. 주례를 맡은 남한산성 김훈 작가의 주례사가 유명하다.
“오늘 결혼하는 함민복 시인은 고통, 고생, 가난, 외로움 속에서도 반짝이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시로써 표현해 온 시인입니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스스로 잘 모른다는 거지요.
신랑은 국내선 비행기도 탄 적이 없어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가며 오늘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 됩니다.”
긴 상이 있다 같이 들어야 한다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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