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좋은 시 푸른 밤. 탄력과 리듬이 좋은 사랑시다.
푸른밤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에움길: 돌아서 가는 굽은 길.
❄출처 : 나희덕, 푸른 밤, 그 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14.
🍎 해설
읽으면 두근거리는 설렘이 있고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는 시다.
첫 번째 연에서 승부가 났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그 무수한 길도/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정말 멋진 대목이다.
둘 째연부터는 스토리와 스팩타클이 있다. 사랑에는 기쁨이나 푸른 밤만이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뼈아픈 아픔이 있고 사랑의 마음을 떠나고 계산을 하는 두레박질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확실한 결론이 내린다.
나의 생애는/모든 지름길을 돌아서/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만이 아닐 수 있다.나의 꿈이나 일생의 소망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하는 한 푸른 밤이다.
이 시는 사랑의 열정과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아름답게 형상화시켰다.
이를 통해 사랑, 소망, 자신이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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