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좋은 시 낙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낙타
/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출처 : 신경림, 낙타, 시집 낙타, 창비, 2008.
🍎 해설
시인은 세상일에 찌들어 살아 왔던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고 회한에 젖은 자기 성찰을 통해 낙타처럼 살고 싶다고 토로한다.
낙타가 알고 있는 것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뿐이다. 낙타는 한평생을 아무것도 못 본 체하며, 굽은 등만 남들에게 내주고 사막길을 걷는다. 다시 태어 난다면 욕심을 버리고 낙타처럼 뚜벅뚜벅 앞만 보고 천천히 걷겠다고 노래한다. 그 낙타가 등에 업고 올 '어리석은 사람'도 시인 자신이다.
무욕의 달관이나 관조의 세계관을 이야기하는 듯한 이 시에 많은 독자들은 감동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평생을 낙타처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알고 살아 왔다. 같은 일상, 같은 패턴의 일생을 살아 왔다. 낙타처럼 큰 욕심 없이 뚜벅뚜벅 걸어 왔을 뿐이다.
자신도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엾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 아니던가.
이처럼 이 시는 외로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어로 조용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정호승 시인의 감상문
인생은 사막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사막을 통과해야 한다. 그 사막에 낙타 한 마리 없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황폐하겠는가. 시인에게 있어 낙타는 곧 시다. 이 시는 낙타를 타고 영혼의 사막 위를 걸어가면서 고통의 얼굴보다 긍정의 얼굴을 보여준다. 인생의 바닥을 대면하면서 참다운 자신과 만나고 있는 마음이 무위에 이르렀다. 이제 버릴 것은 다 버리고 초연하다. 언젠가 몽골의 고비사막을 지나다가 야생낙타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낙타가 바로 저승길을 오가는 시인이었구나.
- 정호승 시인의 언론 기고문에서 발췌.
낙터처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민복 좋은 시 부부 (0) | 2021.06.20 |
---|---|
나희덕 좋은 시 푸른 밤 (0) | 2021.06.19 |
오규원 좋은 시 한 잎의 여자 (0) | 2021.06.15 |
이정하 좋은 시 사랑의 우화 (0) | 2021.06.14 |
안도현 좋은 시 고래를 기다리며 (0) | 2021.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