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명시 하관. 이 블로그는 박목월 시인의 하관(下棺)을 '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카테고리)로 선정하였다.
하관
/박목월
관을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출처: 박목월, 하관(下棺),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 해설
박목월 시인의 시는 크게 보아 두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제1기는 자연 서정을 노래한 청록파의 시 세계다. 제2기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휴매니즘을 추구하거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 탐구하는 시 세계다.
이 <하관(下棺)>은 시인의 제2기 대표작 중 하나다. 사랑하는 아우를 잃은 슬픔이 가득한 이 시에는 시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묻어 있다.
시인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면서도 죽음에 대한 슬픔을 최대한으로 절제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감동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생로병사의 인생사에서 죽음과 사별처럼 큰 일이 어디 있으랴. 슬픔의 절제와 극기, 이 시는 명시다.
🌹 박목월 시인 자작시에 관한 대담
- 대담자 김종길 시인
김종길 시인: 저는 <하관(下棺)>이 큰 작품이라고 봅니다. 계씨(季氏,동생)가 돌아가신 건 언제였지요.
박목월 시인: 재작년(1964) 12월입니다.
김종길: 이 작품은 아우가 돌아가시고 나서 곧 쓰신 것입니까?
박목월: 아닙니다. 1년 동안 거의 아우의 죽음을 잊고 있다가, 꿈에 아우가 자주 나타나더군요. 그 1년 동안 한 줄씩 되어가곤 있었습니다만 1년쯤 시간이 흐르니까, 아우가 죽었을 때 받았던 날것대로의 슬픔이 가라앉고 아우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말갛게 그저 바라 보일 뿐입니다. 그런 심경에서 시집 나올 무렵에 완결 지은 것입니다.
김종길: 우선 이 시에서는 수식어, 특히 형용사가 최소한으로 절약되어 있어요. 박 시인의 그 전 시에 그렇게 많던 형용사가 .....
박목월: 일부러 죽였지요. 제재나 테마가 테마인 만큼 수식어가 많이 씌어지질 않더군요.
김종길: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하고 끝을 맺은 이부분은 대가시(大家詩)다운 '깨달음'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3행은 시의 최고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박목월: 과찬의 말씀입니다. "열매가 떨어지는 이야기"는 완전히 제것이 아닌 어느 무명, 신인의 작품에서 비슷한 걸 본 것 같습니다.
김종길: 그러나 설사 이 구절은 그대로 누구의 것을 따오셨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의 문맥 가운데이기 때문에 이만큼 산 것입니다. 엘리어트도 인용능력을 보면 시인의 능력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목월 시인의 언론 대담록에서 발췌, 1966년.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하고 소리가 들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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