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좋은 시 요즘 뭐하세요? 당신은 요즘 뭐하세요?
요즘 뭐하세요?
/문정희
누구나
다니는 길을 다니고
부자들보다 더 많이
돈을 생각하고 있어요
살아 있는데 살아 있지 않아요
헌옷을 입고 몸만 끌고 다닙니다
화를 내며
생을 소모하고 있답니다
몇 가지 물건을 갖추기 위해
실은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어요
충혈된 눈알로 터무니없이
좌우를 살피며 가도 가도
아는 길을 가고 있어요
❄출처 : 문정희, 요즘 뭐하세요?, 다산의 처녀, 민음사, 2010.
🍎 해설
요즘 뭐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니? 그저 그래. 그럭 저럭.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돈 벌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 다니고, 맛 있는 맛집 찾아 다니고, 좋은 옷 입기 위해서 소핑몰을 검색한다. 눈이 충혈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게 우리가 아는 길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는 화두를 던진다. 욕망 투성이인 이 아는 길은 많은 것을 빼앗기고 있는 길이라고 노래한다. 다람쥐 체바퀴의 삶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다른 길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결국 다른 길은 우리가 아는 길속에 있다. 메마르고 돈만 밝히는 이 아는 길에서 인정이 있고 훈훈한 삶을 찾아내려고 자기 나름대로의 성찰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 문정희 시인은 요즘 뭐하세요?
요즘 나는 광활한 사막을 떠올리고 있다. 역병의 시대, 불안한 현실의 고통과 고립 때문일 것이다.
사막은 폐허와 죽음의 이미지이지만 기실 신비한 은유와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뿌리 없이 떠도는 마른 검불 덩어리 회전초(回轉草)를 떠올린다. 텀블위드(Tumbleweed)라는 이 떠돌이 풀들이 몸을 둥글게 말아가지고 사막을 굴러다니는 모습은 놀랍도록 강렬하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일 년에 한두 번 사막에 비가 내리면 그 자리에 얼른 씨를 뿌려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이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로 상처를 입었을 때나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 부재(不在)로 가득한 사막을 떠도는 회전초들을 떠올리며 나는 시간을 추스르기도 한다. 황금빛 검불로 사막을 굴러다니는 그들은 식물의 자서전이 아니라 어떤 성자의 혼이 생명의 경전을 써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 문정희 칼럼 ‘사막을 떠도는 풀’(2021.3)에서 발췌.
요즘 뭐하세요?
충혈된 눈알로 터무니없이
좌우를 살피며 가도 가도
아는 길을 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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