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좋은 시 바람의 말. 잔잔한 사랑시 위로시.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출처 : 마종기, 바람의 말,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사, 1980.
🍎 해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두고 떠나야만 하게 되었다. 시인은 자기가 죽은 후 남겨질 사람을 위해 꽃나무를 심는다. 꽃나무를 스치는 바람인 듯 내 영혼은 돌아와 사랑하는 당신을 보듬어 줄 것이다. 바람이 되어서라도 당신 곁에 가끔 오겠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람이 불면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애절한 사연을 옆의 사람에게도 안들릴 정도로 잔잔하게 읊조리듯 전한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적 에스프리는 감동을 준다.
이 시는 종전에는 최고의 사랑시중의 하나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이후에는 지친 일반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시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의 심신이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착한 당신’, ‘피곤한 당신’을 마치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착한 당신, 피곤한 당신에 대한 잔잔한 염려에서 사람들은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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