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 명시 낙화. 당신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나는 사람인가.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출처: 이형기, 낙화, 이형기 시전집, 한국문연, 2018.
🍎 해설
꽃의 낙화는 쉽다. 그러나 인간의 이별은 어렵다. 시인은 꽃이 진 후에 열매를 맺듯이 인간의 이별의 아픔은 영혼의 성숙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시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꽃의 낙화가 여름날의 무성한 녹음과 가을날의 열매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듯이 우리의 삶도 풍성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청춘기의 이별과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꽃에게 이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자연스럽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자꾸만 현재를 더 붙잡으려다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대체로 항상 이별에 실패한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에서는 박수칠 때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떠나라는 뜻으로 이 시를 낭송하는 일도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구절이 인기가 있다.
아무튼 이별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영혼의 성숙을 이룬 경지로 승화시키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이건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어디 실연의 아픔뿐이겠는가. 인간은 무수한 이별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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