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한 빗소리. 비 오는 밤의 서정을 아름답게 노래.
빗소리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출처 : 『폐허이후』 창간호, 1924. 1.
🍎 해설
이 시를 쓴 주요한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썼던 소설가 주요섭의 형이다. 목사였던 아버지가 성경에 나오는 인명을 활용해 자식의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는 비오는 밤의 서정을 노래한 시다. 192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우울한 시풍과 달리 구체적이고도 선명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경쾌하고도 밝은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밤을 ‘깃을 벌리는 새’에 비유하고, 비 내리는 소리를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에, 비 오는 모습을 “다정한 손님”에 견주는 표현 방식이 동영상적이다.
‘비가 옵니다’ 이 구절의 반복은 비가 내리는 심상과 어울려 비 내리는 상황을 재현하는 효과도 지닌다.
이 시가 일체의 한자어를 배제하면서, 음감이 부드러운 순수 우리말과 구체적인 정감을 환기하는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서정시를 개척한 것은 평가할 만 하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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