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딸애는 아버지의 정신을 알게 되리라.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 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
❄출처 : 이상국 시집, 『뿔을 적시며』, 창비, 2012.
🍎 해설
정반대로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와 딸의 구도로 시는 시작한다. 어느 날 농촌에 사는 아버지가 딸애가 사는 서울의 한 원룸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딸아이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아버지에게 침대를 양보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닥이 더 편하다고 바닥에서 잔다.
아버지는 ‘대지의 소작’이고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는 딸은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리는 것만 배운 그 딸도 일하는 걸 배운 아버지의 건강한 삶의 정신을 알게 되리라.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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