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무명시인M 2023. 3. 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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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딸애는 아버지의 정신을 알게 되리라.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 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

 

출처 : 이상국 시집, 뿔을 적시며, 창비, 2012.

 

🍎 해설

정반대로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와 딸의 구도로 시는 시작한다. 어느 날 농촌에 사는 아버지가 딸애가 사는 서울의 한 원룸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딸아이가 바닥에서 자겠다고, 아버지에게 침대를 양보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닥이 더 편하다고 바닥에서 잔다.

 

아버지는 대지의 소작이고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는 딸은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리는 것만 배운 그 딸도 일하는 걸 배운 아버지의 건강한 삶의 정신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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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의 소작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나는 바닥에서잔다.
그애는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 준다. 아빠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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