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자격. 당신은 연인이 될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자격
/유안진
초가을 햇살웃음 잘 웃는 사람,
민들레 홀씨 바람 타듯이,
생활은 품앗이로 마지못해 이어져도,
날개옷을 훔치려 선녀를 기다리는 사람,
슬픔 익는 지붕마다 흥건한 달빛 표정으로
열이레 밤하늘을 닮은 사람,
모습 있는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사랑하기에 너무 작은 자신을 슬퍼하는 사람,
모든 목숨은 아무리 하찮아도 제게 알맞은 이름과
사연을 지니게 마련인줄 아는 사람,
세상사 모두는 순리 아닌 게 없다고 믿는 사람,
몇 해 더 살아도 덜 살아도 결국에는 잃는 것
얻는 것에 별 차이 없는 줄을 아는 사람,
감동 받지 못하는 시 한 편도
희고 붉은피톨 섞인 눈물로 쓰인 줄을 아는 사람,
커다란 것의 근원일수록 작다고 믿어
작은 것을 아끼는 사람,
인생에 대한 모든 질문도 해답도
자기 자신에게 던져서 받아내는 사람,
자유로워지려고 덜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
맨살에서 늘 시골집 저녁연기 내음이 나는 사람,
모름지기 이런 사람이야말로
연인 삼을 만하다 할지어다. 🍒
❄출처 : 유안진 시집, 『봄비 한 주머니』, 창비, 2000.
🍎 해설
여러분은 어떤 남자입니까? 어떤 여자입니까?
여러분은 연인이 될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연인의 자격을 가지기 위하여, 나는 ‘맨살에서 늘 시골집 저녁연기 내음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시골집 저녁연기 내음이 과연 어떠한지 맡고 싶어진다.
초가을 햇살웃음 잘 웃는 사람,
민들레 홀씨 바람 타듯이,
생활은 품앗이로 마지못해 이어져도,
날개옷을 훔치려 선녀를 기다리는 사람,
자유로워지려고 덜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
맨살에서 늘 시골집 저녁연기 내음이 나는 사람,
모름지기 이런 사람이야말로
연인 삼을 만하다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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