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정호승 별들은 따뜻하다

무명시인M 2023. 2. 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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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좋은 시 별들은 따뜻하다. 지금은 별이 없는 시대이다. 희망의 따뜻한 별을 찾아 보도록 하자.

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출처 : 정호승 시집, 별들은 따뜻하다, 창비, 1999.

 

🍎 해설

별을 보려면 어둠이 필요하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 없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다. 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도 겨울이라는 어둠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운다.

 

시인은 아주 추운 어둠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는 가난했고, 두려웠고, 절망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이 있었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별이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눈 내린 보리밭길에 밤이 왔으니 캄캄한 겨울이다. 겨울의 캄캄하고 배고픈 밤은 길다. 내 가난의 하늘이므로 춥고 배고픔은 더 심하다.

 

진리의 때가 늦고 용서가 거짓이 될 때, 북풍이 새벽거리에 몰아치고 새벽이 다시 밤으로 이어질 때 그 하늘은 '죽음의 하늘'이다. 그러나 그런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정말 따뜻했다.

 

어두운 현실에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별을 바라보게 만든다. 눈 내리는 보리밭길에 흰 첫 별이 뜰 때부터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에 푸른 마지막 별이 질 때까지 총총한 저 별들에게 길을 물으며 캄캄한 겨울을 통과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시 전편에 흐르는 명시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보면 대부분 두려움과 가난과 거짓으로 점철된 어둠의 시간이다. 또한 지금은 별이 없는 시대, 별이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대이다. 고통과 인내의 시절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자만이 그 아름다운 별을 볼 수 있다. 절망과 어둠 속에 피어나는 꽃, 바로 그 따뜻한 별을 보도록 하자.

 

🌹 정호승 시인의 자작시 해설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 정호승

저는 별을 좋아합니다. 달도 좋아하지만 별을 더 좋아합니다. 저는 밤길을 걸어가다가 달을 바라볼 때보다 별을 바라볼 때 더 살아 있다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달은 매일 변하나 별은 변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저는 이제야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제야 내가 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별이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별들이 왜 어둠 속에서 빛나며 그걸 아는 데에 평생이 걸리는지, 왜 제 인생의 어둠이 깊어져야 별이 더 빛나는지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좌절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등등 인간의 수만큼이나 밤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을 애써 피해왔습니다. 가능한 한 인생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지 않으면 별이 뜨지 않습니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밤이 없으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활짝 피어난 꽃은 어두운 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도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웁니다.

 

신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눈동자의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했을까요?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어둠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밝음을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별은 밝은 대낮에도 하늘에 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 별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어두운 밤에만 그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통해서만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듯이, 밤하늘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별을 바라볼 수 있듯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내 삶의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캄캄한 밤, 그것이 비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일지라도 그 밤이 있어야 별이 뜹니다. 그리고 그 별들은 따뜻합니다. 젊은 날에 제가 쓴 시별들은 따뜻하다를 다시 읽어봅니다.

시는 생략....

출처 : 정호승 에세이,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 정호승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한마디, 비채, 2006에서 대폭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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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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