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김소월 명시 진달래꽃 <이어령 해설>

무명시인M 2021. 2. 6.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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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명시 진달래꽃,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김소월 명시 진달래꽃 이어령 해설. 이 블로그에서는 이 시를 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카테고리)로 선정하였다.  이어령 교수의 유명한 해설을 여기에 펌한다.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출처: 김소월, 진달래꽃, 초판본 진달래꽃 김소월 시집, 소와다리, 2015>

🍎 이어령 교수의 해설

🌹이별가인가 사랑의 고백인가

한국 사람이라면 진달래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이면 백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이별을 노래한 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학생의 국어실력 정도만 가지고 있어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조심스럽게 그 시를 다시 읽어보면 그것이 단순한 이별가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진달래꽃은 모든 시제(時制)가 미래추정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이 그렇고, 말없이 고이 보내오리다가 그렇습니다. 뿌리우리다, 흘리우리다의 모두가 예외 없이 미래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를 노래하고 있는 시의 화자는 이별과는 정 반대로 열렬한 사랑을 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현재의 님은 역겨워하지도, 떠나지도 않고 있지요.

 

If you go away라고 번역된 영시에는 분명히 If의 가정법으로 시작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을 치는 지동격서(指東擊西)의 구조로 되어 있는 시인 것입니다. 종래의 가시리형의 이별가로 고쳐 쓴다면 나보기 역겨워 가시는 님이여,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옵니다가 아니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신 그대를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었지요와 같이 현재형이나 과거형의 진술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이별가입니다.

 

하지만 미래 추정형의 가정적 체험을 읊은 진달래꽃은 현실적으로는 이별 아닌 사랑 체험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봅시다. 누구도 이별가가 아니라 사랑의 열렬한 고백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가장 지고한 사랑의 기쁨을 가장 슬픈 이별의 상태로 표현하고 있는 이 시는 모든 언어의 뜻이 이중적으로 되어 있는 아이러니의 구조임을 알려 줍니다. 산문의 언어가 한 가지 의미로 되어 있는 모노 세믹(단일 기호)이라고 한다면, 시의 언어는 진달래꽃의 경우처럼 구조적으로 폴리 세믹(복합 기호)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의 이중적이고 아이러닉한 의미 파악에 익숙하게 되면 사물의 의미나 느낌을 흑백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다()기호체계인 시의 공화국에서는 흑백 사이에 존재하는 어렴풋한 반원에 해당하는 회색이 기회주의자를 상징하는 빛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김소월의 시에서 사랑은 기쁘지만 않고 동시에 이별은 슬프지만 않은 그레이 존이 만들어집니다. 시의 공화국에서는 그 그레이 존(gray zone)이야말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개척지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진달래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보다도 리얼리티가 없는 노래, 교과서 같은 윤리적 메시지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음악에 음치가 있듯이 시에는 詩痴(시치)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만남 속에 이별이, 이별 속에 만남이

김소월은 진달래꽃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시에서 반대의 일치를 노래하고 있는 아이러니의 시적 구조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높이 평가를 받는 국민적인 시인이 된 것입니다. 피다지다는 흑백 양분법의 세계에서는 서로 양립 불가능한 반대말입니다.

 

하지만 김소월의 그 유명한 산유화의 시작 연에는 꽃이 피네 꽃피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고 되어 있고, 끝 연에는 정 반대로 꽃이 지네 꽃지네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구조의 진술문인데 하나는 피다, 하나는 지다로 되어 있습니다.

 

피고 지는 것이 하나가 되는 소월의 산유화속에서는 만남과 이별도, 삶과 죽음도 하나가 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비단 안개처럼 이별을 노래한 시도 사랑의 만남을 찬미하는 시도 아닌, 그 어느 쪽의 시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만남 속에 이별이, 이별 속에 만남이 있는 사람의 복합적인 그레이 존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이별가라고 단정하고 동그라미를 치는 교육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김소월 읽기요, 시 읽기요, 나아가서는 삶의 읽기입니다.

 

🌹 좋아도 죽는 한국인

한국인들은 기쁠 때도 슬플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슬퍼 죽겠다는 말과 함께 좋아 죽겠다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죽음은 부정이 아니라 극상의 긍정어가 되기도 합니다.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을 보거나 감동적인 광경을 볼 때 한국인의 감탄사는 죽여 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국말에서는 무엇을 강조하거나 최상급의 상태로 말할 때에 죽는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진달래꽃의 마지막 연에 나오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가 바로 그 보기입니다. 그러니까 소월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것은 시적 표현이라기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쓰는 관용어인 것입니다. 죽어도 아니 한다, 죽어도 안 가겠다처럼 아주 흔하게 쓰이는 말입니다.

 

이화는 내 젊음을 묻은 곳입니다. 눈을 감으면 가을날 샐비어가 여름 햇빛의 기억처럼 붉게 타오르는 교정이 보입니다. 나는 그 뜰을 지나 헤아려 본다 헤아려 본다 하면서 한 번도 헤아려 보지 못한 교회의 그 길고 하얀 돌계단을 한발 한발 디디며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출처: 이어령 교수(당시 67) 이화여대 고별 강연,2001.9.7.강연 원고 청중 배포

- 이 강연은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이어령 교수는 암 투병 끝에 2022.2.26, 별세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강연 원고는 역사적인 명강으로 남을 것이다.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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