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작가 마지막 편지.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김유정 작가가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마지막 편지
/김유정 작가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렬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채리지 않으면 이 몸을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라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둬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허거든 네가 적극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마리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쏙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딱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 1937년 3월 18일 김유정으로부터 🍒
❄출처 : 김유정 편지, “필승前”, 1937, 『원본 김유정 전집』, 엮은이 전신재, 강, 1987, 제3부 편지편에 수록.
🍎 해설
* 필승: 일제 강점기 시대의 소설가 안회남(安懷南)의 본명. 김유정의 휘문고교 같은 반 깐부.
*궁둥이가 쏙쏙구리: 폐결핵과 함께 치질로 고생하고 있다는 뜻.
동백꽃, 봄봄 등 김유정 작가의 소설은 아직도 우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는 데 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그는 그의 명작 30편을 그의 나이 27세~29세에 다 썼다. 그가 30대까지만 살았더라도 한국문학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28세 때 폐결핵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죽기 전인 1937년 3월 18일에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이 편지는 그가 치질과 가난에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말해준다. 이 편지는 결핵으로 쓰러지기 직전 탐정소설 번역으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닭과 뱀을 사서 고아 먹고 싶노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폐결핵 치료제인 항생제는 없었고 폐결핵을 치료하려면 고기 등을 잘 먹는 수 밖에 없었다. 생의 의욕을 끝까지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김유정은 이 편지를 쓴지 11일만에 29세의 나이로 저 세상으로 갔다. 김유정의 마지막 편지가 되고 말았다.
최인호 작가는 이 마지막 편지를 자신이 스무 살 문학청년 시절 습작 공책 첫머리에 베껴 놓고 읽을 때마다 울었다고 고백하였다.
최인호 작가는 자신이 침샘암으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어 35년간 연재해 온 가족이라는 소설을 끝내면서 이렇게 썼다.
“아아, 나는 돌아가고 싶다.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가서 김유정의 팔에 의지하며 광명을 찾고 싶다. 그리고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싶·다.”
- 최인호 연재 소설 가족, 샘터사. 2009년 10월 402회.
찬란했던 우리들의 젊은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이란 이토록 허무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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