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수필

김부식 삼국사기 서문

무명시인M 2022. 11. 1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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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 삼국사기 서문. 이 삼국사기가 간장항아리를 덮는데 쓰이질 않기를 바란다/김부식

김부식 삼국사기 서문. 우리나라 역사서 중 가장 오래된 역사책의 저자 서문.

삼국사기 서문

/김부식

신(臣) 김부식(金富軾)이 아뢰옵니다.

옛 열국도 또한 각각 사관을 두어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맹자는

“진(晉)나라의 『승(乘)』과 초(楚)나라의 『도올(檮杌)』과 노(魯)나라의 『춘추(春秋)』는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들 해동 삼국도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사실이 역사책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신(老臣)에게 그것을 편집하도록 명하신 것인데,

스스로 돌아보니 지식이 부족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해동 삼국도 사실이 역사책에 기록되어야 합니다.

엎드려 생각해보옵니다.

성상폐하(聖上陛下, 고려 인종)께서는 요(堯)임금과 같은 문사(文思)를 타고나시고, 우(禹)임금과 같은 근검을 체득하시어, 정무에 골몰하던 여가에 전고(前古)를 두루 살펴보시고,

 

“요즈음의 학사(學士)와 대부(大夫) 중에 『오경(五經)』, 『제자(諸子)』와 같은 책이나 진(秦)ㆍ한(漢) 역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두루 통달하고 상세히 설명하는 자가 간혹 있으나, 우리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도리어 아득하여 그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한탄스럽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모르는 일이 한탄스럽습니다.

하물며 생각건대, 신라ㆍ고구려ㆍ백제가 나라를 세우고 솥발처럼 대립하면서 예를 갖추어 중국과 교통하였으므로,

범엽(范曄)의 『한서(漢書)』나 송기(宋祁)의 『당서(唐書)』에는 모두 열전(列傳)을 두었는데, 중국의 일만을 자세히 기록하고 외국의 일은 간략히 하여 갖추어 싣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고기(古記)라는 것은 글이 거칠고 졸렬하며 사적(事跡)이 누락되어 있어서, 임금된 이의 선함과 악함, 신하된 이의 충성과 사특함, 나라의 평안과 위기,

백성들의 다스려짐과 혼란스러움 등을 모두 드러내어 경계로 삼도록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재주와 학문과 식견을 갖춘 인재를 얻어 일가(一家)의 역사를 이루어서 만세(萬世)에 이르도록 해와 별처럼 빛나게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후세에 역사의 교훈을 남겨야 합니다.

그러나 저라는 사람은 본래 재주가 뛰어나지도 않고, 또한 학식이 깊은 것도 아니었는데, 늙어서는 날이 갈수록 정신이 흐릿해져서 부지런히 글을 읽어도 책을 덮으면 곧바로 잊어버리고, 붓을 잡으면 힘이 없어서 종이에 대고 써 내려가기가 어렵습니다. 저의 학술의 둔하고 얕음이 이와 같으며, 예전의 말과 일에 대해 어두움이 이와 같사옵니다.

이런 까닭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겨우 책을 완성하였지만 볼만한 것이 되지 못하였으니, 그저 저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성상 폐하께서는 소홀하고 거친 솜씨를 이해해주시고 멋대로 지은 죄를 용서하시며,

비록 명산(名山)에 보관하기엔 부족하더라도 간장 항아리를 덮는데 쓰이지는 않았으면 하옵니다.

저의 구구하고 망령된 뜻을 하늘과 해님께서 굽어 살펴주소서.

 

삼가 본기(本紀) 28권, 연표(年表) 3권, 지(志) 9권, 열전(列傳) 10권을 찬술하고, 표(表)와 함께 아뢰어 임금님의 눈을 더럽힙니다. 🍒

 

출처 : 1. 김부식,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삼국사기를 임금에게 올리는 글, 원문은 1145(고려 인종), 사료는 삼국사기 원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동문선 권44(서거정 편찬 동문선/1478, 조선 성종)에 수록, 현재 서울대 규장각 도서 등이 소장.

2. 현대어 번역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한국고전인문연구소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201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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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역사서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삼국사기는 대한민국 역사서중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국보로 지정). 삼국시대 역사서로서 본기 28(고구려 10, 백제 6, 신라·통일신라 12), () 9, 3, 열전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역사를, 정치적인 흥망과 변천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국보 전 50권: 옥산서원 등이 소장.

이 삼국사기 서문은 김부식이 4년간 집에서 삼국사기 전 50권을 완성한 후 삼국사기와 함께 임금에게 올린 책 서문이다.

 

김부식은 이 서문에서 삼국사기를 편찬한 목적을 밝히고 있다.

먼저, 후세에 역사의 교훈을 주기 위해 삼국사기를 편찬한다는 목적을 밝혔다. 삼국사기는 "임금된 이의 선함과 악함, 신하된 이의 충성과 사특함, 나라의 평안과 위기, 백성들의 다스려짐과 혼란스러움 등을 모두 드러내어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취지를 분명히 하고있다.

역사서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

강렬한 국가의식과 민족 주체성을 표방한다. 김부식은 역사서 발간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중국의 옛 열국은 각각 사관을 두어 일을 기록하였다. 우리들 해동 삼국도 역사가 오래되었으니 사실이 역사책에 기록되어야 한다"며 주제척 사관을 펴고 있다.

 

삼국사기는 "중국 역사서는 중국의 일만을 자세히 기록하고 외국의 일은 간략히 하여 갖추어 싣지 않았다. 고기라는 것은 글이 거칠고 졸렬하며 사건의 자취가 누락되어 있다"고 편찬 취지를 설명한다.

 

삼국사기는 진나라의 승, 초나라의 도올, 노나라의 춘추를 언급하면서 동양의 전통적인 역사 편찬 원칙인 사실주의에 입각해 쓰였다고 덧붙인다. 사실주의는 삼국사기의 주된 특징이다. 그래서 이 삼국사기는 그 어떤 역사서보다 높은 권위를 갖고 있다.

김부식이 간장 항아리를 언급한 이유는?

끝으로 김부식이 이 서문에서 50권에 달하는 방대한 삼국사기가 조정이나 백성들이 간장 항아리를 덮는데 쓰이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위트와 유머를 사용한 것은 대역사가의 한이 배어 있는 애교로 느껴진다. 왜냐하면 김부식은 당파싸움에 밀려 관직을 그만둔 후 4년 동안 물을 먹으면서 이 삼국사기를 집에서 집필한 한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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