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나 짧은 시 모과. 첫사랑은 모과와 같다. 왜?
모과
/서안나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
❄출처 : 저자 고정희 등, 『시를 잊은 나에게』,북로그컴퍼니, 2017.
🍎 해설
모과는 사과나 배처럼 칼로 깎아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거나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는 과일이다. 승용차 안에 두고 그 향기를 맡거나 우려내어 향긋한 차를 마신다.
대부분의 첫사랑은 애만 태우다가 끝난다.
끝내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가슴앓이로 남은 첫사랑이기에 대부분 ‘충치처럼 까맣게 썩어버린다.’ 모과가 바로 그런 과일이다.
품에 안을 수 없는, 그저 가슴속으로만 애태우던 사랑이기에 먹지는 못하고 향기만 맡아야 하는 ‘모과’가 바로 ‘첫사랑’이다.
그러나 그렇게 울퉁불퉁 못생기고 직접 먹지도 못하면서 그 은은한 첫사랑의 모과 향기가 이 초가을에도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 서안나 시인
1965년 제주도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0년 《문학과 비평》 겨울호를 통해 등단. 1991년 《제주한라일보》신춘문예 소설부문 가작으로 당선.
시집으로 『푸른 수첩을 찢다』와『플롯속의 그녀들』, 『립스틱 발달사』가 있음. 현재 제주작가회의 회원,〈현대시〉, 〈다층〉 동인으로 활동 중.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회 회원, 다층 편집위원.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짧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보영 짧은 시 행복 (0) | 2022.09.15 |
---|---|
정호승 짧은 시 반달 (0) | 2022.09.11 |
이훤 짧은 시 그대도 오늘 (0) | 2022.09.03 |
유홍준 짧은 시 우는 손 (0) | 2022.08.30 |
윤보영 짧은 시 바람 (0) | 2022.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