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좋은 시 사랑의 역사. 귀하의 사랑의 역사를 작성해 보십시오.
사랑의 역사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히고 굳을 만하면 받히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
❄출처 : 이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창비,2006.
🍎 해설
*음합니다; 어둡다.
*굳을만 하면 받히고: 시 원문에는 받치고라고 되어 있는데 받히고의 오자로 보여 정정. 받히다는 뿔같은 것에 세게 부딪히다라는 뜻.
제목이 참 멋있다. 살다 보면 사랑은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하는 것 같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울고, 상처받고, 그리곤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고……누구에게나 사랑의 역사가 있다.
사랑을 하다가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마음의 벽을 쌓는다. 그 벽 뒤에 살게 된다. 사랑이 다시 오지 못하게 위해서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렇게 벽을 쌓았으면서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이내 사랑에 빠졌다가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굳을 만하면 받히고 굳을 만하면 받히는’ 일이 생겨난다. 사랑의 상처가 ‘굳을 만하면 받히고 굳을 만하면 받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은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찾아오고 떠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참 신비한 일이다. 그렇게 깊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어느 순간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게 된다.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면 사랑을 하며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기게 된다. 사랑의 열정으로 다시 뜨거워진다.
귀하의 사랑의 역사는? 귀하는 단 한 번만 사랑을 하셨나요? 귀하의 사랑은 지금 귀하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굳을 만하면 받히고 굳을 만하면 받히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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