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좋은 시 거미줄. 진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인내를 응원하는 시다..
거미줄
/정호승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송이송이 소나기가 매달려 있을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
❄출처 : 정호승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비, 1999.
🍎 해설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 때 거미줄이 가장 아름답다.
거미는 먹고 살려고 거미줄을 쳐 놓는다. 우리도 먹고 살려고 살다가 보면 진실은 알지만 그것이 진실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다.
인내의 미덕을 강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내를 응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거미나 거미줄을 그냥 스치듯 보지만 시인은 거기에서 인생을 본다. 시인의 거미에 관한 다음 시는 참으로 서정적이다.
거미
/정호승
이른 아침
백담사 가는 길을 걸을 때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로 이어진 거미줄에
내가 평생 흘린 모든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왕거미 한 마리
내 눈물을 갉아먹으려고 황급히 다가오다가
아침햇살에 손을 모으고
고요히
기도하고 있었다. 🍒
❄출처 : 정호승 시집, 『밥값』, 창비, 2010.
이른 아침 시인은 백담사 거미줄에 눈물방울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거미줄에서 반짝이는 아침 이슬이 시인에게는 자신이 평생 흘려온 눈물이었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왕거미조차 그 눈물이 하도 애달파 갉아 먹으려던 것마저 포기하고 고요히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노래하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서정시다.
🌹 정호승 시인의 한 마디
“그동안 한움큼 움켜쥐고 살아왔던 모래가 꼭 쥔다고 쥐었으나 이제는 손아귀 밖으로 슬슬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손바닥에 오직 한 알 남아 있는 모래가 있다면 그것은 시의 모래일뿐이다. 그 모래는 언제나 눈물에 젖어 있었다.”
❄출처 : 정호승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비, 1999에서 시인의 후기.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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