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오월 <짧은 수필>. 아주 짧은 수필이므로 완독해 주시길 바란다.
오월/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실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출처: 피천득, 인연, 인연 피천득 수필집, 민음사,2018>
♬ 해설
1.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실료애정통고)
사랑을 얻음도 고통이요
사랑을 잃음도 또한 고통이다.
중국 구양수의 시라는 설이 있으나 검색 결과 확실하지 않다.그래서 작가는 그냥 중국 시인이라고만 했는 듯 하다.
2.시냐, 수필이냐
문장이 하도 아름다워서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그러나 문학평론가들은 수필로 분류한다.
3.유명한 구절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오월 속에 있으면 나는 언제나 스물 한 살 청년이다를 암시)
4.추모 tip
2007년 5월,작가가 향년 97세로 별세했을 때 언론들은 이렇게 보도했다.
“피천득 그대는 우리의 영원한 오월이다.”
“오늘의 한국 수필은 피천득이라는 영원한 샘에서 발원한다.이 샘에서 목을 축인 이들이 훗날 조금씩 물줄기를 더해 이룬 강물이 오늘의 한국 수필이다."
오늘도 피천득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항상 오월 속에 있어야 할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 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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