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서정주 명시 무등을 보며

무명시인M 2021. 8. 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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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명시 무등을 보며. Photo Source: www. pixabay.com

서정주 명시 무등을 보며. 이 블로그는 이 시를 '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카테고리)'로 선정한다.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출처 : 서정주, 무등을 보며, 현대공론, 1954년에 발표, 서정주 시선, 은행나무, 2019.

 

🍎 해설

*주 남루: 낡아 해진 옷

지란: 산에서 자라는 향기로운 풀들(영지와 난초)

갈매빛: 짙은 초록빛

농율쳐: 물살이 갑자기 세차게 흘러

청태: 푸른 이끼

 

서정주 시인은 자신이 쓴 950편에 이르는 시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시가 이 시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묘소 시비에 실린 시도 이 시다.

 

이 시는 6.25전쟁 직후 시인이 광주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 발표한 작품이다.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이다. 무등산은 광주 사람들에게 특별한 산이었다. 지조와 기개의 상징이었다. 시인은 가난에 함몰되지 말고 무등산의 의연한 모습을 닮아서 가난을 극복하자는 것을 주옥같은 시어로 형상화하였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그래도 믿고 의지할 것은 부부이고,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은 우리 자식들뿐이다. 부부가 힘을 합쳐 새끼들을 키우자고 호소한다. 그 어떤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옥돌의 자존심을 지키며 가난을 이겨 내자고 노래한다.

 

어찌 6.25 전쟁 직후뿐이겠는가. 어찌 경제적 가난뿐이겠는가.

삶의 긍정적 자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절망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용기. 오늘날에도 감동을 주는 명시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Photo Source: www.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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