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좋은 시 여름 일기. 이 시를 읽으면서 이번 찜통 더위를 견뎌 내시기 바란다.
여름 일기
/이해인
1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2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러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보다 먼저 떠오르는
감탄사일 뿐!
둥근 해를 닮은
사랑일 뿐!
❄출처 : 이해인, 여름 일기,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열림원, 2014.
🍎 이해인 시인의 자작시 해설
여름을 노래한 제 시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면 여름의 장점을 익히며 여름을 잘 견뎌내야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저의 여름 시들 중에 두 개를 다시 읽어보며 올 한 해도 기쁘게 ‘여름의 수련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갈수록 지구가 뜨거워지니 여름도 더 빨라지고 더위 또한 더 견디기가 쉽질 않아 ‘어떻게 한여름을 견디어 내나’ 슬며시 겁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수도복과 머리수건의 무게까지 더하니 땀도 더 많이 나고 힘이 들어서 요즘 가장 부담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불평 없이 더위를 참는 일과 거르지 않고 꾸준히 약 먹는 일이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옷장에서 주섬주섬 삼베 홑이불을 꺼내는데 후배 수녀의 문자가 들어옵니다. “습기와 모기로 본원의 여름은 얼마나 덥고 밤잠을 설치실지 걱정됩니다”라고. 혼자 머무는 침방엔 에어컨 대신 선풍기 하나씩 주어졌으나 너무 더울 적엔 선풍기의 바람마저 별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휴게실에 비로소 에어컨을 설치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살다보니 이런 때도 있네?’하며 웃어보는 우리 수녀들. 일명 ‘짤순이’라고 불리는 소형 탈수기만 있다가 노약자와 환자들을 배려해 신형 세탁기를 빨래방에 들여놓은 지도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써서 낡고 유난히 덜컹거리던 그 짤순이가 제가 출장 다녀온 사이 없어져서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물건도 오랜 시간 사용하다 보니 워낙 정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유럽식의 큰 건물에 살면서 우리가 에너지 절약도 할 겸 불편한 가난을 선택해서 사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좋은 지향은 즐거운 불편으로 감수해야 할 텐데 갈수록 불편한 불편이되니 어쩌면 좋지?” 하고 저마다 푸념 섞인 반성을 하던 중에 우리는 쓰레기 매립장과 생활폐기물 연료화 및 발전시설장 견학을 다녀오며 폭염, 대기오염, 미세먼지, 온실가스에 대한 전문인의 특강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엔 바다쓰레기에 대한 심각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유난히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게 되는 계절이 여름이다보니 우리 모두 집에서도 밖에서도 각자가 쓰레기 줄이는 노력을 조금씩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휴지 대신 손수건 쓰기, 나만의 컵 지니고 다니기 등 이런저런 결심을 다시 해 보는 이 시간, 얼른 사무실의 에어컨을 끄고 부채를 찾으러 창고로 향합니다.
해를 보며 해 아래 사는 기쁨을 노래하게 만드는 이 여름을 새롭게 사랑하면서.
- 이해인 시인 언론 기고문에서 발췌(2019.7)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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