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 좋은 시 소. 인간사회의 말에 대하여 성찰해 보게 만든다.
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출처 : 김기택, 소, 시집 소, 문학과지성사, 2005.
🍎 해설
한마디의 말도 사용할 줄 모르고 다만 음매라는 울음이 유일한 언어인 소. 하고 싶은 말을 몸 밖으로 내보낼 길이 없어 소는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 보지만 말이 눈 밖으로 나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수천만 년을 소는 눈에 말을 가두어 두고 살아왔다. 시인은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라고 압축했다. 당신에게 내뱉으면 눈물이 될 것 같아 속에 가두어 두고 수천만 년 동안 머뭇거린 소의 눈이다.
눈으로 아무리 말을 쏟아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다시 배에서 꺼내어 씹는 일을 반복한다. 되새김질이다. 안으로 들어온 말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함으로써 소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스스로 마무리한다. 소는 눈으로 하던 말을 안으로 되새겨 완전한 침묵에 빠진다.
소의 해도 어느덧 반환점을 지났다. 자신의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도 과장하거나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소. 말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성찰해 보게 한다. 우리 사회에선 가시돋친 말들을 얼마나 서슴없이 하고 있는가? SNS 상에서의 댓글 폭언. 강한 어조로 거친 감정적 표현을 써 가며 상대방이 내 말에 어서 순응하기를 바라는 대화법.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처럼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이면서 되새김질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우선 배려심 많은 소의 눈빛으로 상대방을 쳐다보자. 그리고 남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말을 동그란 감옥에 가두어 두고 남을 존중해 주는 말을 하도록 노력해 보자. 소처럼...
시인 롱펠로우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뱉는 말은 상대방의 가슴 속에
수 십년 동안 화살처럼 꽃혀있다.”
소의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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