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김명인 좋은 시 너와집 한 채

무명시인M 2021. 7.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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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좋은 시 너와집 한 채. Photo Source; www. pixabay.com

김명인 좋은 시 너와집 한 채. 길을 잃으면 길이 보인다. 아름다운 시다.

너와집 한 채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 바다 온통 단풍 불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살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붙는 몸으로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 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 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출처 : 김명인, 너와집 한 채, 들 건너는 사람, 세계사, 1992.

 

🍎 해설

때때로 삶이 고달플 때 누구나 꾸는 꿈이 있다. 속세를 등지고 세상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외딴 행복을 오롯하게 누리고 싶은 꿈이 그것이다.

참으로 고즈넉하면서 쓸쓸한 깊은 산골의 너와집,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수제비 뜨는 나이 어린 순박한 처녀의 외간 남자로 살고 싶은 꿈을 아름다운 시어로 형상화했다.

 

산골에서 길을 잃음으로써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역설을 시인은 주창한다. 시인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모색의 길 찾기에 나서보자고 아름다운 시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김사인 시인은 한 술 더 떠서 이런 곳에서 인생을 탕진해 보자고 유혹한다. 역설의 미학이다. 함께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쫓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말리는 술도 숨겨 놓고 질기게 마시겠네

 

몇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인의 각주: 이 시는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가운데 한 구절에서 운을 빌려왔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Photo Source; www.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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