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

백석 명시 국수

무명시인M 2021. 4. 1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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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명시 국수. Photo Source: www.pixabay.com

백석 명시 국수. 이 블로그는 이 시를 '명예의 전당 헌액 명시'(카테고리)로 선정하였다.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출처 : 백석, 국수, 백석시전집, 창작과비평사, 1987.

 

🍎 해설

우선 평안도 사투리가 워낙 많아서 현대어로 바꿔 본다.

 

국수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새가 벌판으로 내려와 울음소리를 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아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칫독 묻은 움막으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 바른 가장자리 혹은 응달쪽 외따른 산 옆 언저리 비탈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구렁이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 속을 지나서 구수하고 시원한 구시월 가을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담기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졌다는 먼 옛적 할머니가

또 그 짚으로 만든 자리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어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할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 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식초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부륵한 갈대를 깐 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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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를 철저히 파괴시켰다. 가족을 북간도로 징용으로 학병으로 뿔뿔이 헤어지게 만들었다. 우애와 단합심이 강했던 농촌공동체도 파괴시켰다.

 

시인은 국수를 매개로 하여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공동체의 포근하고 다정한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국수가 그득히 담기어오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함께 한다. 김칫독에 간 어머니도 함께 한다.

 

시인은 파괴된 농촌공동체의 복원을 염원하는 정서를 형상화하고 있다. 거치른 갈대를 깐 뜨뜻한 방에서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국수를 함께 나눠 먹는다.

 

시인은 일제 강점기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가족공동체와 농촌공동체의 삶을 그리워함으로써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아름다운 시어로 조용히 담아내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시다.

 

이 시를 읽고 나서 국수와 냉면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러분께서는 이번 주말에 가족과 함께 인근 평양냉면집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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